아돌프 히틀러는 돼지가 가장 만나고 싶어할 만한 사람이다. 아니, 그런 점에서라면 소나 양도 마찬가지의 심정일 것이다. 이 대량학살자가 그만큼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 동물들이 해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가리고는 다른사람들에게 ‘그 장면이 끝나면 말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시체를 먹는’ 위선적인 이들이다. 그러므로 지배자 민족이 될 자격이 없다.” 나치의 초기 선전 책략 가운데는 담뱃갑에 자연을 사랑하는 이 독재자가 애수에 잠긴 얼굴로 사과를 깎는 사진을 담아서 파는 것도 있었다. 사실 독일의 채식주의 단체가 자신이 세력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한때 고기를 뺀 식사 를 당 강령의 하나로 만들려고 고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식량 공급 체계를 혼란시켜 자신이 구상중인 전쟁 수행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을 깨닫고는 결국 포기했다.
그는 마침내 1933년에 집권하게 되었을 때, 이 채식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에게서 구세주라는 찬양을 받았다. 히틀러의 이러한 별난 기벽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한다. 히틀러는 자신을 채식주의 신봉자로 만든 것은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s Wagner)의 작품이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가 나치의 연대기 편자 헤르만 라우슈닝(Herman Rauschning)에게 한 말을 직접 옮겨보겠다. “바그너가 우리 문명의 부패 중 상당 부분을 육식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오? 나는 고기는 손도 안 대오. 바그너의 그런 말에 큰 영향을 받아서인데 나는
그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전통적인 역사가들은, 히틀러의 이런 채식 위주의 식사는 위경련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정신분석학적 역사가들은 내각 회의 중 엄지손가락을 빠는 등 잘 알려져 있는 히틀러의 구순고착(oral fixation)행위나 조카딸을 살해한 후 생긴 죄책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히틀러에 대한 이러한 사실 자체는, ‘채식주의자들은 천성이 평화적’이라는 생각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음식에 관한 측면에서만)은 아직도 히틀러가 ‘진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구심을 내비친다. “그의 비타민 캡슐에 동물성 젤라틴이 들어 있지는 않았을까? 빵에 베이컨을 끼워 먹었던 건 아닐까?”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자신과 똑같이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역시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사가 제인 바카스(Jane Barkas)에 따르면, 히틀러는 처음에 채식주의․ 자연주의 단체인 반더포겔(Wandervogel)을 최상의 아리아인 튜턴기사단(중세 때 프로이센을 정복해 강력한 국가로 변모시킨 독일 십자군 단체)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이 채식주의 집단에 나치의 민족 이론을 강제로 주입시키려고 했다.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모든 채식주의 운동을 금지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이들 주요 잡지인 <채식주의자의 관점(Vegetarian Warte)>은 발행이 금지되었고 주요 회합소들은 강제수용소로 바뀌었다. 또 유명한 채식주의자들이 체포되는가 하면, 요리책들도 몰수당했으며, 쾰른의 유명한 베가 레스토랑(Vega Restaurant)의 주인인 발터 플라이스(Walter Fleiss)는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최우선 수배자 명단에 올려졌다. 분명 그의 죄목은 단지 유대인풍의 채식주의를 했다는 것이었을 터였다.
이런 억압은 여하한 ‘단체’에 대한 나치의 심한 불안감이 주원인이었지만, 전쟁에 굶주린 이 정권을 특히 괴롭혔던 점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채식주의자와 평화 운동 사이의 전통적인 연관성 때문에 이 독재자가 감추고 있을 뿐 사실은 평화주의자일지 모른다는 암시성을 풍길까 봐 염려하는 것이었다.
비록 전쟁중에 채식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히틀러는 세계에서 ‘인간 이하’의 종족을 쓸어내는 일만큼이나 채식주의 원칙에 있어서도 끝까지 헌신적으로 임했다. 『히틀러의 밀담 1941~44 (Hitler's Secret Conversation 1941~44)』의 저자(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렇게 썼다. “그는 육식이 인간성을 해친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더 굳게 믿는다. 물론 그도 전쟁 중에는 식량 제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없음은 잘 안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이 문제에 손을 댈 생각도 하고 있다.”
이 채식주의자의 민족 말살 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증오를 받는 살인자이면서 동물 애호가였던 그는 머리 위에서 소련의 폭탄이 떨어지면서 내는 둔탁한 소리에 장단을 맞추면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채식주의 요리사 프로라인 만치알리(Fraulein Manzialy)는 그를 따라 자살한 몇 안 되는 추종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 참고문헌 : 악마의 정원에서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시체를 먹는’ 위선적인 이들이다. 그러므로 지배자 민족이 될 자격이 없다.” 나치의 초기 선전 책략 가운데는 담뱃갑에 자연을 사랑하는 이 독재자가 애수에 잠긴 얼굴로 사과를 깎는 사진을 담아서 파는 것도 있었다. 사실 독일의 채식주의 단체가 자신이 세력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한때 고기를 뺀 식사 를 당 강령의 하나로 만들려고 고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식량 공급 체계를 혼란시켜 자신이 구상중인 전쟁 수행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을 깨닫고는 결국 포기했다.
그는 마침내 1933년에 집권하게 되었을 때, 이 채식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에게서 구세주라는 찬양을 받았다. 히틀러의 이러한 별난 기벽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한다. 히틀러는 자신을 채식주의 신봉자로 만든 것은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s Wagner)의 작품이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가 나치의 연대기 편자 헤르만 라우슈닝(Herman Rauschning)에게 한 말을 직접 옮겨보겠다. “바그너가 우리 문명의 부패 중 상당 부분을 육식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오? 나는 고기는 손도 안 대오. 바그너의 그런 말에 큰 영향을 받아서인데 나는
그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전통적인 역사가들은, 히틀러의 이런 채식 위주의 식사는 위경련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정신분석학적 역사가들은 내각 회의 중 엄지손가락을 빠는 등 잘 알려져 있는 히틀러의 구순고착(oral fixation)행위나 조카딸을 살해한 후 생긴 죄책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히틀러에 대한 이러한 사실 자체는, ‘채식주의자들은 천성이 평화적’이라는 생각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음식에 관한 측면에서만)은 아직도 히틀러가 ‘진짜’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구심을 내비친다. “그의 비타민 캡슐에 동물성 젤라틴이 들어 있지는 않았을까? 빵에 베이컨을 끼워 먹었던 건 아닐까?”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자신과 똑같이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역시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사가 제인 바카스(Jane Barkas)에 따르면, 히틀러는 처음에 채식주의․ 자연주의 단체인 반더포겔(Wandervogel)을 최상의 아리아인 튜턴기사단(중세 때 프로이센을 정복해 강력한 국가로 변모시킨 독일 십자군 단체)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이 채식주의 집단에 나치의 민족 이론을 강제로 주입시키려고 했다.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모든 채식주의 운동을 금지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이들 주요 잡지인 <채식주의자의 관점(Vegetarian Warte)>은 발행이 금지되었고 주요 회합소들은 강제수용소로 바뀌었다. 또 유명한 채식주의자들이 체포되는가 하면, 요리책들도 몰수당했으며, 쾰른의 유명한 베가 레스토랑(Vega Restaurant)의 주인인 발터 플라이스(Walter Fleiss)는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최우선 수배자 명단에 올려졌다. 분명 그의 죄목은 단지 유대인풍의 채식주의를 했다는 것이었을 터였다.
이런 억압은 여하한 ‘단체’에 대한 나치의 심한 불안감이 주원인이었지만, 전쟁에 굶주린 이 정권을 특히 괴롭혔던 점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채식주의자와 평화 운동 사이의 전통적인 연관성 때문에 이 독재자가 감추고 있을 뿐 사실은 평화주의자일지 모른다는 암시성을 풍길까 봐 염려하는 것이었다.
비록 전쟁중에 채식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히틀러는 세계에서 ‘인간 이하’의 종족을 쓸어내는 일만큼이나 채식주의 원칙에 있어서도 끝까지 헌신적으로 임했다. 『히틀러의 밀담 1941~44 (Hitler's Secret Conversation 1941~44)』의 저자(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렇게 썼다. “그는 육식이 인간성을 해친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더 굳게 믿는다. 물론 그도 전쟁 중에는 식량 제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없음은 잘 안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이 문제에 손을 댈 생각도 하고 있다.”
이 채식주의자의 민족 말살 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증오를 받는 살인자이면서 동물 애호가였던 그는 머리 위에서 소련의 폭탄이 떨어지면서 내는 둔탁한 소리에 장단을 맞추면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채식주의 요리사 프로라인 만치알리(Fraulein Manzialy)는 그를 따라 자살한 몇 안 되는 추종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 참고문헌 : 악마의 정원에서







덧글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얼핏 들었던 것은 생각납니다.
히틀러도 참, 여자였단 설, 살아있단 설 참 다양한 뒷 이야기가 많아요.
그저 정답에 가까운 답이 있을 뿐...
세상에 정답은 없다능
그저 정답에 가까운 답이 있을 뿐...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00
히틀러를 보면 촛불 운동가들의 "正義..."云云하는 論이 떠올라서 ㅋ
Commented by Earthy at 2009/05/20 19:19
어떻게든 촛불과 엮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우리 해구신 어린이.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21
글쎄 원래 난 그러니깐 이해하라구, 응?
뭘 잘나신 님하께서 자기 수위를 드러내려고 안달이셔용?
Commented by Earthy at 2009/05/20 19:22
오늘 많이 까이니까 마음이 급한 해구신 어린이.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22
어씨님 같은 분이 나같은 스펙딸리는 놈이랑 놀아주려고 달아오르시는 걸 보면
ㅋ... 웃어야지 뭐...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23
>>오늘 많이 까이니까
응? 뭔 개소리?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25
"오늘 많이 까이니..."라니? 응?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냐?
어이쿠... 뭔 개소리인지?
Commented by Earthy at 2009/05/20 19:25
여기에 더 이상 운운하고 싶지 않은 본인.
남의 멀쩡한 블로그에서 이딴 짓 하고 싶지 않아 내 이글루에 관련 글 올렸음.
거기서 삽질... 아, 해구신 차단 했구나.
그럼 이만.
나는 내 리플 3분 뒤에 다 지울 거임.
Commented by 海凡申九™ at 2009/05/20 19:26
쩝... 대답도 안 주고 가셨네 oTL
히틀러가 채식을 했냐 안했냐에 대한 사실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상태이지요.
금욕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채식은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세뇌시키려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도 있구요. 실제로는 소시지를 엄청 좋아했더라나?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람에 대해선 확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와 남아있는 자들의 귀를 간지럽히죠.
허나 진실은 저너머에...
그 기준은 전부 애매해서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식용으로 키워져서 도살당한 동물의 고통엔 별 죄책감없이 고기를 먹지만, 불합리로 차별당한 인간의 고통엔 가슴 깊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히틀러가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생명의 기준엔 인간이 포함되지 않았나봐요~?? 사람들에겐 참 모순이 많네요ㅋㅋ
동물의 학대를 지켜볼 수 없어하지만 인간에 대해선 무자비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모습 사이의 간극을 그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요....
본문 내용이 사실이라면 제법 병적인 증세인거 같은데...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학대당하던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감정 이입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 문구가 상당히 재미있네요 -_-ㅋ